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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강원택(정치원)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인터뷰. 작성자 admin 작성일 2018.09.13
          

2018년 지방선거와 보수 정치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2018년 지방선거는 2016년 촛불집회 이후 이어져 온 한국 정치의 근본적 변화를 다시 확인시켜 주었다. 더불어민주당은 대구, 경북, 제주를 제외한 전 지역의 광역단체장 의석을 차지했고, 기초단체장 및 지방의회 선거에서도 압승했다. 서울에서는 서초구를 제외한 24개 구청장을 모두 차지했다. 자유한국당은 사실상 대구-경북 자민련수준으로 지지세가 위축되었고, 바른미래당이나 민주평화당은 정치적 존재감조차 보이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1년 여 만에 실시된 이번 지방선거는 시기적으로 볼 때 집권세력에 대한 중간평가적 속성을 띠고 있었지만 야당들은 대패했다.

이렇게 된 데는 북한 이슈의 영향이 적지 않았다. 작년까지 북한의 잇단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미국과 북한 간 전쟁 발발의 우려를 느낄 만큼 군사적 위기로 치닫았지만,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극적인 변화의 계기가 마련되었고 선거 전날에는 싱가포르에서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도 열렸다. 이러한 안보 위기 극복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역할이 지방선거에서 유권자들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보다 본질적으로는 보수 정당들이 시대적 변화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과거의 틀과 인식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 이번 지방선거의 결과를 만들어 낸 보다 중요한 요인이었다. 2016년 말부터 시작된 국민의 정치적 저항과 그로 인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은 1차적으로는 박 전 대통령의 실정과 무능, 최순실의 국정농단과 관련이 있지만, 사실 박근혜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는 구조적 요인을 안고 있었다. 이명박-박근혜로 이어진 두 차례 보수 정권은 세계화, 정보화, 4차 혁명이라는 시대적 변화와 무관하게 과거 박정희 시대의 정책이나 국정 운영 방식을 고수했고, 그로 인해 이제 유권자의 대다수를 차지하게 된 청년, 장년 유권자들의 불만과 불신을 초래했다. 그래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과정은 박정희 세대와 그것을 거부하는 이들 간의 갈등으로 이어졌고, 그 결과는 박정희 패러다임으로부터의 결별이었다. 다시 말해 박근혜 탄핵은 시대적, 구조적 변환의 의미를 담고 있었고, 2017년 대선에서 보수의 지리멸렬은 그러한 변화를 상징했던 것이다.

그러나 대선 이후에도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보수 정치 세력은 그러한 변화에 둔감했거나 변화를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그동안 각종 여론조사에서 자유한국당의 지지도는 10-15% 수준이었고, 실제로 자유한국당 핵심 지지층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세력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홍준표 전 대표가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끝까지 인정하려고 하지 않은 것이나 김성태 원내대표가 지방선거 결과를 보고서야 뒤늦게 자유한국당을 탄핵한 것이라고 한 것도 시대적 변화에 대한 보수 정당 지도부의 불감 혹은 무능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이번 지방선거는 1990년 이후 지속되어 온 한국 정치의 지형을 크게 바꿔 놓았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한 결과를 보였다. 강남구를 포함하여 이전까지 민주당 계 정당들이 별다른 지지를 받지 못했던 지역에서 단체장이나 지역 의회를 장악하게 되었고, 심지어 대구 지역에서도 패배했더라도 지지도가 크게 상승했다. 그러나 역시 가장 주목해서 봐야 할 곳은 부산-울산-경남 지역이다. 그동안 한나라당 계열 정당이 선거에서 우위를 보일 수 있었던 것은 19903당 합당과 함께 대구-경북과 부산-울산-경남이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힘을 합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구 구성 면에서 볼 때 광주-전남-전북을 합친 유권자의 규모는 대구-경북 유권자의 수와 매우 비슷하기 때문에, 한나라당 계열 정당들은 PK 지역에서의 우위만큼 득표 수나 의석 수에서 앞설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각종 선거에서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상대적으로 고전하더라도 정치적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지방선거에서 확인된 PK 지역의 지지세의 변화는 정치적으로 의미심장한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다.

이번 지방선거의 참패로 보수 정치는 큰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물론 이런 잇단 패배가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1997년과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잇달아 패배했고, 2004년 총선에서도 열린우리당에게 패배했다. 그러나 이번 경우가 특별한 것은 보수 정치의 근본적인 가치가 흔들렸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보수 정치는, 부패와 특권에 대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국가 경제 관리, 국가 운영 능력에 대한 강한 신뢰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과 함께 그 신화는 사라졌고 믿음은 무너져 내렸다. 무엇보다 한국 보수 정치의 기본이었던 박정희 패러다임이 더 이상 우리 사회에 적실성이 없다는 깨달음을 갖게 되었다. 이와 함께 최근 북미 정상회담과 남북 화해 모드로 인해 이제 한반도에서 과거와 같은 냉전적 갈등 구조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었다. 보수 정치의 또 다른 핵심적 가치였던 반공주의 또한 그 영향력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래서 보수 정치는 향후 어떤 가치, 비전을 제시할 수 있을까라는 결코 쉽지 않은 문제에 직면해 있다. 아마도 그에 대한 답은 하루 이틀 사이에 찾아낼 수 없을 것이다. 그만큼 보수 정치의 위기도 길어질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번 지방선거 이후 보수 정치권 전반이 큰 위기감을 느끼게 된 것은 대선 직후와는 다른 모습이다. 그래서 이번 지방선거는 보수 정치가 새로운 길을 찾아 나가는 긴 여정의 첫걸음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