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동문소식>동문 인터뷰 동문소식
동문 인터뷰
* 이 게시물을 공유하기
제목 김형오 전 국회의장(외67) 인터뷰. 작성자 admin 작성일 2018.09.25
   김형오 전 국회의장(외교 67) 인터뷰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은퇴 정치인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왕성한 활동을 하는 현역 작가다. 2012년 발간하여 5만권 이상 팔린 <술탄과 황제> 이래 2016<다시 쓰는 술탄과 황제>, 20186<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는 스테디셀러로 만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 모든 책들은 본인이 직접 현장 취재, 자료 조사, 고독한 집필을 통해 완성했다. 뼛속까지 배인 완벽주의 습관 때문에 어느 한 대목, 어느 한 문장도 슬쩍 표절은 물론 자기 표절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평양 정상회담 합의 뉴스가 요란하게 흘러나오던 96일 오후 햇살 잘 드는 마포 사무실에서 김 전 의장을 만났다.

 

그의 방에 들어서니 한 눈에 만권 이상은 돼 보임직한 책과 자료들이 잔뜩 쌓여있었다. 인터뷰를 진행한 전영기(정치 80) 중앙일보 논설위원이 방대한 서가에 놀라움을 표하자 그는 웃으며 이 정신의 자산들을 공공 도서관에 기증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 자료 분류와 정리 작업이 필수적인데 도와줄 인력이 없어요라며 안타까워했다. 동문이나 국회 혹은 행정부가 한두 명 인력 자원을 한달 정도만 쓸 수 있게 해주면 저 자료더미에서 빛나는 지적 광맥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영기 논설위원(이하 ’): 2012년의 <술탄과 황제>2016년의 <다시 쓰는 술탄과 황제>의 차이는 무엇인가.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하 ’): 책에서 던지고자 하는 공통된 메시지는 역사적인 순간 앞에서 사람이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어야 하는가를 묻는 것이다. 첫 책을 쓰고 나서 많은 독자들의 분에 넘치는 평가를 받았지만 나는 또 다른 자료를 접했고, 터어키에서 또 다른 영감과 그 전에 보지 못했던 역사의 새 흔적을 발견했다. 그대로 넘어갈 수 없었다. 1453년 콘스탄티노풀 전쟁과 두 주인공을 다른 각도에서 조명해야 한다는 열정이 타올랐다. 완벽한 책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책을 다시 쓰게 됐다. 그러고 나니 마음이 좀 놓이더라. 워낙 역사적인 대사건인데다 유럽과 아랍, 기독교와 무슬림의 문명 충돌을 이방인인 나의 시각으로 쓴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모험이었다. 두 차례에 걸쳐 책을 쓰다 보니 오스만의 <술탄> 메흐메드 2세와 비잔티움의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의 진면목을 밝히는 데 한결 가까워진 것 같다. 소녀같다고 할지 모르지만 나는 책을 쓰면서 당시의 상황과 장면에 감정이 이입돼 울기도 여러 번 울었다. (웃음) 내 스스로 때로는 술탄이 되기도 했고, 때로는 황제에 빙의되기도 했다.

 

: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떻게 죽어야 하는가.

: 지켜야 할 가치를 지키기 위해,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 가기 위해 헌신해야 한다. 간단히 말하면 최선을 다하는 삶이다. 술탄 메흐메드 2세가 콘스탄티노플(현재의 이스탄불)을 점령할 때 나이가 21살이다. 14살에 왕이 되었다가 아버지한테 쫓겨나 5년 만에 다시 복귀하고 2년 만에 대업을 이뤘다. 그는 해전에서 고전하자 배를 끌고 산을 넘었다. 의표를 찌르고 배후를 쳤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전략을 썼다. 최선을 다한 삶의 표본이다. 메흐메드 2세가 오스만 600년 역사상 유일무이한 정복자칭호를 받는 건 실적 뿐 아니라 삶의 태도 때문이었다.

반면 어떻게 죽느냐는 콘스탄티누스 11세가 극적으로 보여 준다. 동로마 제국 마지막 황제의 수비군은 7000명이었다. 이 숫자로 술탄의 군사 8만명과 상대했다. 양식은 떨어졌고 신하와 백성들은 항복을 권유했다. 하지만 황제는 소피아 대성당에 사람들을 모아 놓고 신앙을 위해, 조국을 위해, 가족을 위해, 황제를 위해항쟁을 호소하는 격정적인 연설을 한다. 1000년 제국의 마지막 전투는 이렇게 죽음을 통해서라도 지켜야 할 가치를 확인하는 데서 시작됐다. 콘스탄티노풀 시민들은 목숨과 명예를 바꿨다. 김형오 같으면 그 자리에서 그런 연설을 할 수 있었을까를 여러번 반문했다. 보편적인 사가들은 콘스탄티누스 11세를 어리석은, 우유부단한 황제라고 기술했지만 나는 그렇게 보지 않았다. 어떤 가치를 위해서 싸우고 어느 자리에서 죽어야 하는지를 알려줘 국민을 하나로 만든 황제이다.

 

: 21살의 술탄은 왜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해야 했나.

: 유럽의 다수 학자들은 터키 유목 민족의 지배욕이라고 본다. 하지만 나는 한번도 있어본 적이 없는 신문명, 신질서를 향한 술탄의 열망이었다고 생각한다. 왜 그런가. 그는 성을 정복했지만 유린하지 않았다. 신앙의 자유를 허락했다. 재건축과 도시정비 사업을 진행했다. 거주민의 안정적인 삶을 우선시했다. 무슬림의 빛나는 문화가 이로부터 수백년 이어졌다. 콘스탄티노플은 세계의 중심도시가 되었다. 이 사람은 단순한 정복자가 아니었다. 원대한 신문명의 야심은 5년동안 왕위에서 쫓겨나 있을 때 다져졌다. 절치부심, 새 시대를 기다렸다. 준비된 리더십은 나이에 비례하지 않는다.

 

<술탄과 황제>를 쓰고, 그리고 다시 쓰면서 김형오 의장은 하루 최소한 10시간을 책상에 앉았다고 술회했다. 결벽증 소리를 들을 정도로 완벽을 추구하는 모습에서 1400년대 술탄과 황제의 최선을 다하는 삶이 오버랩됐다. 정치 현역에서 물러났다고 하나 정치를 보는 눈은 매섭고 강했다. 입법부 수장을 지낸 스케일과 역사성도 대번에 느껴졌다.

 

: 요즘 정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

: 대한민국이 민주 공화국이라는 것은 헌법 1조에 나와 있다. 나는 그 말만 들으면 설레기도 하고 울컥하기도 하고 심장이 용솟음친다. 아마 정치외교학도는 모두가 그랬을 것이다. 이 나라는 그냥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다. 김구, 이봉창, 윤봉길, 도산, 이승만 등 수많은 사람들이 피와 목숨을 던져서 생긴 것이다. <백범일지>를 읽어보면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우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이 조국을 위해 목숨을 던졌다. 6.25 전쟁 때도 나라를 지키고 국민의 생존을 위해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희생을 치러야 했나. 또한 가난을 면해보자는 일념 하나로 중동, 월남, 독일에서 얼마나 많은 모래먼지를 뒤집어 쓴 나라인가. 이 역사성을 지닌 민주공화국을 잘 지켜서 후대에 물려주어야 한다. 헌데 이런 가치가 지금 존중되고 있는가? 지켜지고 있는가?

 

: 한국과 한국인의 뿌듯한 자부심이 민주공화국에서 나온다는 말씀이신 것 같다.

: 민주(民主)는 다른 말로 하면 자유와 이것의 절제이다. 공화(共和)는 국민적인 통합이고 화합이고 연합이다. , 자유, 자율과 국민통합이 민주공화국의 다른 이름이다. 그런데 지금의 민주는 개인의 방만한 일탈을 자유로 왜곡하고 있다. 노골적으로 얘기하면 목소리 큰 사람의 주장이 민주인 것처럼 포장되어있다. 공화는 힘 있는 사람의 정치적인 구호에 눌리고 신음하고 있다. 국민통합은 정치적으로 힘 있는 사람과 힘 없는 사람이 토론해서 지켜야할 것을 찾아야 이뤄진다.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가 통합, 화합의 위기에 직면했다. 지금 한국이 과연 민주공화국이냐는 이 물음을 청와대부터 시작해 모든 사람들이 처절하게 되새겨야 할 때다.

민주공화국은 민주주의의 헌법 체계를 따라야 하는 것이다. 현 정권 운영의 문제점은 헌법, 법률에도 없는 청와대의 비서실 정치가 중심이 되어가는 것이다. 청와대 공화국이 되어간다는 얘기다. 국무총리 이하 각부 장관들은 힘들게 청문회를 거쳐 검증을 받지 않나. 청와대는 이런 감시와 견제를 전혀 받지 않고 있다. 이런 식으로 국정이 운영되면 아무리 훌륭한 국무총리가 와도 청와대가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상황이 된다. 제대로 법치가 되고 행정이 정상적으로 굴러가려면 장, 차관한테 인사권이 내려가야 한다. 장관이 명실상부하게 부처와 관련된 인사와 조직과 예산을 집행하고 책임져야 한다. 잘못된 제도를 새롭게 고치지 않는 게 적폐다.

 

: 왜 우리 국회는 일하지 않는가.

: 이에 대한 물음은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왜 일을 안 해도 되는 국회였는가이다. 이유는 공천권이 일을 안 해도 딸 수 있게 되어서이다. 국회의원은 선거만 없으면 할 만하다는 자조가 나올 정도로 의원들이 공천권에 목을 매고 있다. 마음이 온통 콩밭에 가 있으니 무슨 일을 제대로 하겠다. 일을 열심히 했냐 여부와 공청권 획득이 관계가 없으니 정치가 후퇴하고 있다.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주고 민주적인 공천 제도를 마련해야 국회가 발전한다. 두 번째는 일하는 국회의 의미가 뭔가인가 대한 물음이다. 언론에서는 법률안을 처리하지 않으니 일하지 않는 국회라고 비난하지만 진짜 일하는 국회는 법률안을 심의하고 토론하는 국회다. 이 과정에서 행정부가 제대로 견제된다. 하지만 현재 국회는 심의와 토론을 하기 보다 의제 싸움에 골몰한다. 본안 심의는 한두 시간이면 끝나니 자신이 어떤 법을 어떻게 통과시키는지도 모르고 있다. 법 하나에 대해 최소 심의 시간을 정하고 독회를 반복해서 법을 만들어야 한다. 심의하는 국회로 돌아가지 않으면 계속 욕을 먹을 것이다.

 

: 한국, 미국, 북한간 비핵화 및 평화협상에 대해서는.

: 나는 민주공화국이라는 신념 아래 살고 싶은 사람이다. 도저히 핵을 머리에 이고는 살 수 없다. 남북간 회담을 하자는 것도 결국 다 비핵화 때문에 하는 것 아닌가. 비핵화라는 초점이 잠시라도 흐려져서는 안 된다. 이건 한국과 한국인의 사활이 걸린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을 향해 비핵화 주장을 선명하게 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힘들게 여기까지 쌓아 올린 한반도 평화 체제를 흔들자는 것이 아니다. 비핵화는 미국의 문제이기 전에 한국의 문제이다.

 

인터뷰를 마칠 때가 되었다. 김 의장은 <술탄과 황제>에 대한 애정을 다시 한 번 보였다. “이책을 해외 출판하고 싶어요. 영화로도 만들어 글로벌 문화 시장에 진출하는 꿈이 있어요.” 어느 시인이 그랬나. 청춘은 인생의 특정 시기가 아니라 마음의 어떤 상태를 말한다고. 열정이 식으면 정신이 시든다, 그 때부터 늙음이 시작된다고.